소소한/오늘

급성 충수염에서 복막염까지 복강경 수술 후기(충수염, 복막염 증상)

소라잉 2021. 12. 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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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며칠 블로그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난주 내내 병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11월 마지막 주말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사건의 전말이라고 하기엔 모호한 주말 일상

11월 마지막 주말

지지난 토요일 테니스 레슨을 마치고, 저녁에는 친구와 홀덤을 즐기며 오랜만에 술도 한껏(?) 마셨다. 시간은 어느덧 열두 시를 지나있었고 집에 왔을 때는 새벽 두 시가 좀 넘었던 것 같다. 술을 너무 마셨던 탓인가? 마지막에 맡았던 기름 냄새가 부대꼈는지, 먹은 대로 토하고 잠이 들었다. 그마저도 머리가 아파서 아침 일찍 잠이 깼다. 아직도 비워낼 게 남았는지, 아주 끝까지 토해내고 겨우 잠이 들었다. 오후가 되었을 때 속은 좀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오래간만에 경험한 숙취로 다시는 쏘맥을 말아먹지 않으리 몇 번을 다짐했다. 그날 저녁은 동생이 주문한 치킨을 아주 조금 맛만 보고 치킨과 함께 온 양배추 샐러드를 먹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울렁감을 느끼며, 토를 했다. 전날 먹은 것이 딱히 없었고, 이미 위에서는 소화가 되었는지 노랗거나 초록색인 위액인지 담즙만 뱉어냈다. 배도 쑤시는 듯이 아팠다. 경험상 병원을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걸을 자신이 없어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갔다. 배는 점점 아파왔고 대기하면서도 끙끙대자,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바로 수액실로 가서 누워 간단 진료를 받았다. 복통도 있었지만 구토감이 심해서 봉투도 받았다. 토를 하진 않았다. 진통제를 다 맞고서, 초음파를 찍는 것이 어떨까 물어왔지만 거절했다. 올해 건강검진으로 위내시경 검사도 했고, 관리 차원에서 복부 초음파도 진행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팠지만 처음보다는 나았기에 그저 3일 치 약만 받아 돌아왔다. 처방은 위장경련인 것 같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거의 하루 종일 약만 먹고 자고 그랬던 것 같다.
이때 초음파를 찍었으면 좀 나았을까?

수술일 당일과 이후 병원 일지

화요일, 수술 당일(1일 차)

  • 복근이 당기는 듯한 느낌
  • 근육통이라 생각하고 아세트아미노펜 먹었으나 효과를 느낄 새도 없이 극한 고통에 응급 콜
  • 특히 오른쪽 아랫배가 쿡쿡 찔러서 맹장 의심
  • 염증으로 인한(아마도) 체온 상승으로 음압 격리실 찾아 응급실 감
  • 코로나 간단 검사 결과 후 진단, 처치 시작
  • 피검사, 엑스레이, 씨티 촬영 결과 충수염과 복막염 의심, 수술 동의
  • 수술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 수술 전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회복하기로 함

잠을 자서 그런지, 어제보다는 나은 듯했다. 다만 복근이 당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날 심히 구토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약은 먹어야 하니까, 죽을 조금 먹었다. 이틀간 숙취에, 위경련에 시달렸으니 너무 씻고 싶었다. 뭔가 좀처럼 개운하지 않았던 탓에 빨리 머리를 말리고 다시 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기를 사용하면서도 계속되는 복근통에 근육통 진통제를 먹고 쉬어야 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여기쯤부터는 사실 기억이 좀 나지 않는다. 나의 계속되는 끙끙댐에 옆에서 듣던 동생이 응급실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아질 거라며 아세트아미노펜을 가져다 달라했다. 먹고 누우면 될 거란 생각에.
약 성분이 채 소화되기도 전에 나는 방을 기어 나왔다.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배가 아팠고 눈앞이 깜깜했다. 동생에게 일단 전날 방문한 병원에 물어봐달라 했다. 병원 쪽에서도 너무 아프면 응급실을 가라는 권유를 한 것 같다. 참, 내 생에 119를 부를 때가 있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끙끙대며 1층으로 내려가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곧 사람들이 왔고 휠체어에 앉았다. 마침 비까지 내리고 있었는 데 그것 따위 무슨 상관이랴. 우둘투둘한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복통은 더해졌다. 


응급 구조대원이 왔을 때, 37.8도였기에 음압 격리실이 있는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저번에 엄마와 응급실을 가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이 났다. (그 순간에도..) 갈 수 있는 데가 있길 바라며, 병원에 전화를 돌리는 대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물론 계속 아팠지만. 몇 군데 전화를 돌리고서 격리실은 있는데,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진료는 할 수 없다는 병원 측 내용을 전달해주었다. 보호자로 탑승한 엄마와 동의를 하고 그 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너무 아팠기 때문에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대화로만 증상을 얘기하고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간단 검사와 정밀검사 두 가지를 진행하고, 간단 검사는 1시간 후에 결과가 나오고 정밀검사는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간단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고서야 진통제를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시작된 채혈. 이미 탈수가 심해서인지 간호사분들이 채혈하는데 꽤 고생을 하셨다. 왼팔은 진통제를 오른팔은 채혈로만 서너 번, 그리고 발까지 시도한 끝에 원하는 양을 뽑을 수 있었다. 피가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냥 당기면 나오는 게 아닌가 보다. 엑스레이와 CT촬영을 하자고 했고, 조영제 어쩌고에 동의하라 해서 사인을 했다. 촬영을 위해 격리실 밖으로 나가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야 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나를 데리고 움직이는 분은 비 맞을 걸 걱정하셨지만 나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통제 덕분인지 괜찮아지는 것 같은데, 갑자기 응급의 선생님이 수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알려주고 떠나셨다. 곁에 있던 간호사분들은 수술 안 할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까 수술복으로 갈아입자고 하셨다. 그럼 처음부터 수술복으로 주시지-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을 때만 해도 정신이 있었던 터라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갈아입었지만, 수술복은 그냥 그분들께 맡겼다. 부끄러움이고 뭐고 모르겠다 싶었다.


수술을 담당하게 될 의사가 와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보면 그땐 이미 정신이 혼미했던 게 아닐까 싶다. 대충 수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고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는 것만 알아들었다. 뒤이어 내미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쏟아지는 질문들에 이리저리 대답했다. 내 키와 몸무게는 잘못 알아들으셨지만, 두 번 정도 정정하다 크게 상관있겠냐 싶어서 관두었다. 수술실 가기 위해 다시 밖으로 이동했고 드디어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와 같이 수술방으로 향하면서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수술 잘 받고 오라는 엄마의 울먹하는 듯한 목소리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들어갔다. 수술받기 위해서는 수술 침대로 움직였어야 했는데, 그때 힘겹게 움직여서 누운 이후 기억이 없다.


정신이 좀 들어 눈을 떴을 때는 엄마가 내 발끝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수술은? 이란 질문에 엄마는, 수술은 다 끝났고 여기는 회복실이란 대답을 해주었다. 내일 다시 오겠다며 엄마는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나가셨다. 저녁 7시가 넘은 건가? 옆 회복실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창에 비친 조명 때문에 분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자는 둥, 마는 둥 가만히 누워 시계를 계속 보았다. 눈을 잠깐 감았다 뜨면 시간이 훌쩍 지났으리란 예상과는 다르게 그대로였다. 어쩐지 병원의 시간은 잘 흘러가지 않는 듯했다. 특히 새벽이 그랬던 것 같다. 매 시간마다 오는 간호사들의 혈압 체크, 열 체크 등등으로 잠을 쭉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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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수술 후 1일(2일 차)

  • 저혈압으로 하루 더 중환자실에 있기로 함
  • 코로나 정밀검사 결과 음성 나와서 중환자실-홀로 나옴
  • 물도 못 마시는 슬픔과 갈증, 입술 부르틈
  • 수액 맞는 거 엄청 힘듦, 차갑고 퉁퉁 붓고 터질 것 같았음

충수염 복막염 후기충수염 복막염 후기

수술복이 바지였던 것 같은데, 난 언제 원피스 형을 입게 된 걸까 싶다. 아무튼 수술을 해서 그런지, 아픔이 끝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복통은 끝났지만, 수액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왼팔에는 네다섯 개쯤 되는 수액을 꽂고 있었던 것 같다. 오전이 되자, 수술했던 담당의가 찾아와 설명해주었다. 사진도 함께 보여주면서, 허허. 흔히 말하는 맹장염-즉 충수염인데 그 충수 돌기가 터지고 더러운 물이 배 안에 가득 찬 상태, 복막염까지 진행이 이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적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패혈증까지 왔다고. 그리고 정상혈압으로 자꾸 회복되지 않아, 하루 더 중환자실에 있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아, 여기가 중환자실이라니! 어쩐지 회복실 치고 과하게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이제 아픈 건 괜찮고 수액 맞는 게 너무 힘들다 했더니, 팔을 나눠 맞는 게 좋을 것 같다 했다.


오후가 되자, 베드에 누운 채 밖으로 옮겨졌다. 내가 있던 데는 중환자실 중에서도 격리된 곳(어쩐지 그래서 혼자.. 였구나, 역시 과하게 좋은 곳이었다.)이었는데 코로나 정밀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기에 홀로 나왔다. 엄마가 면회를 왔고, 엄마를 보자 눈물이 찔끔 났다. 엄마는 휴대폰과 동생이 챙겨가라는 아이패드를 가져왔다며 보여주셨다. (어차피 일반병실 갈 때까지 아이패드는 쓸 수 없겠지만) 엄마는 중환자실을 떠나기 전, 담당의로 부터 설명을 듣는 것 같았다. 걱정할 엄마를 생각하니 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수술 부위를 소독해주는 간호사분이 물었다. 평소 아픔을 잘 참는 편인지, 예민한지. 보통 그 상태로 오는 사람은 드문 편이고, 간혹 할아버지들이나 그렇게 온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어느 순간에 응급실을 찾아야 했을까? 에고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폰을 보거나 친구들과 간간히 연락하는 게 전부였다.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 엉덩이도 움직여주었다. 무료하던 차에 간호사분들이 인계할 때 나에 대해 뭐라 하는지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데, 대부분 알 수 없는 의학용어들로 전달을 했지만 어쩐지 알 것만 같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디테일한 부분들까지도 전달하는 점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곧 날은 저물고, 어두워졌지만 창가라 그런지 찬바람이 느껴졌다. 추워하면서도, 열이 내리지 않아 얼음팩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어야만 했다.

 

 


+그날 밤, 모르핀(확실치 않음)을 맞고 있던 팔에 모르핀(이라 추정되는 수액)을 중단한 후 혈관이 막히는 것을 방지하고자 생리식염수를 주입했다. 그런데 그 순간 몸안 전체가 울려 퍼지며 느껴지는 압박감이 너무 생생하다. 너무 놀라서 침대 헤드를 올려달라고 했다. 가쁜 숨을 쉬며 한동안 앉아있었다. 도대체 그건 뭐였을까? 파란 심벌즈 같은 소리랄까. 이후 시간이 지나서 또다시 식염수를 주입했을 때는 괜찮았다.

 

목요일, 수술 후 2일(3일 차)

  • 새벽에 방귀 뀜!
  •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이동
  • 물, 이온 음료, (건더기 없는) 주스만 허용
  • 소변줄 제거하고, 셀프 소변 양 체크 시작

밤새 열체크와 혈압체크에 걱정했는데, 다행히 일반실로 옮길 수 있겠다는 전달을 받았다. 밤 사이 나는 살짝궁 방귀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제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건가? 희망을 품었다. 일반실로 가면 적어도 3시간, 나눠서라도 많이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일반실로 가기 전 엄마가 마지막(?)으로 면회를 오셨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병원 면회가 쉽지 않기 때문에, 중환자실로 오시게 했다. 병원생활에서 필요할 것 같은 몇 가지를 부탁했었는데 절반은 쓰지도 못한 것 같다. 그중 추운 게 싫어서 수면양말을 챙겨달라 했는데, 입원하는 내내 열이 내리지 않아서 수면양말을 신기는커녕, 이불도 덮지 못한 채 얼음팩 벌칙을 받아야 했다.
길고 긴 대기시간 후에 일반실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켜 휠체어로 이동했다. 누워있을 때 조금씩 뒤척이긴 했지만, 갑자기 일어나 앉는 작은 행동이 아주 버거웠다. 어찌나 숨이 가쁘던지, 환자는 환자인가 보다 싶었다. 그래도 일반실로 오고 나니, 앉고 일어서는, 또 눕는 동작이 불편해서 그렇지 서있는 동작 자체만은 괜찮았다. 설렁설렁 걸으면 될 것 같았다. 일반실을 같이 쓰는 환자분들도 젊어서 금방 퇴원할 것 같다며 응원을 보태주셨다.

 

소프트워터 상큼한 청포도 성분
물 대신 마시려고 샀는데, 청포도 맛이 왜 안날까?

이제 완전 금식에서 물이나 건더기 없는 주스까지는 마셔도 된다고 했다. 드디어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기쁨과 달리, 물을 마시자마자 비린맛이 느껴졌다. 약은 먹어야 해서, 딱 그때만 마셨다. 다른 음료를 마셔도 입에 달지 않았다. 일반실에서는 소변줄을 제거하고, 대신 셀프로 소변 양을 체크해야 했는데, 은근히 압박이 되었다. 일반실로 와서 열심히 운동해야지-라는 마음과는 달리, 계속되는 열, 혈압 체크, 그리고 수많은 수액을 거쳐야 했기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반실 온 첫날은 운동도 많이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중환자실에서 이틀 못 잤으니, 푹 잘 수 있을 거란 기대와는 다르게.

금요일, 수술 후 3일(4일 차)

  • 물 같은 음료 외에 금식
  • 피검사, 엑스레이 촬영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누워있으면 이동식 엑스레이 기계로 내 속을 찍고 갔다. 이제는 스스로(?) 영상의학과에 가서 찍어야 한다. 움직임 자체가 힘든 건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서도 쉽게 다녀올 수 있었다. 움직이기 위한 그 과정(?) 이 힘들 뿐이었다. 그래서 제법 시간 될 때마다 병원 내를 마구 돌아다녔던 것 같다. 잠깐 바깥바람도 쐬고, 꾸르릉 거리는 뱃속 가스를 내보내는 데 도움이 될까 더 걸었던 것 같다. 그러다 간호사 한분한테 오래 자리 비우면 안 된다, 운동도 병동 안에서만 해야 한다, 일반실 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자주 체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으로 혼이 났다. (의사쌤이 운동 많이 하라 했는데요..ㅠㅠ)

충수염 복막염 수술
트리가 수박으로 보였던, 그리고 끝없는 수액 ㅠㅠ

물이 힘들고, 이온 음료는 싫어서 오렌지 주스를 골랐다. 성분을 열심히 보고 과일 농축액이 가장 많을 것 같은 '따옴'주스를 골랐다. 동생 말로는 따옴에 건더기가 있다고 했다. 찾아보니 퓌레를 갈아서 넣은 거라 건더기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수 없이 평범한(?) 오렌지 주스인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다시 사 왔다.

따옴주스에는 건더기가 있을 수 있다, 델몬트 오렌지주스를 추천

전날 밤도 못 잤기 때문에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전날 잠을 못 이룬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옆에 계신 한 분도 잠이 오지 않아 많이 힘드신 듯했는데, 문제는 영상 소리를 켜놓고 감상하시는 거였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상태라 나의 예민함도 한껏 솟았던 것 같다. 직접 말을 건네는 게 너무 어려워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늦은 밤 간호사분한테 살짝 부탁을 했다. 그렇게 영상 소리는 줄어들고, 이제 잠을 좀 잘 수 있겠다 싶은 찰나 강한 바람이 창문을 두드려 댔다. (진짜 머선일 ㅠㅠ에효) 내 자리는 창가 쪽이었는데, 바람이 어찌나 불면 걸쇠를 걸지 않은 창문이 스르륵 열릴 정도였다. 머리맡으로 스르르 드는 찬 바람과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는 내 잠을 다 깨우고 말았다. 새벽 내내 날씨를 보며 풍향과 풍속, 내가 누워있는 방향을 고려했다. 반대로 누워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토요일, 수술 후 4일(5일 차)

  • 아침 : 엑스레이 촬영, 피검사 x
  • 전날 밤부터 새벽 즈음 무른 변(을 볼 때마다 줄어드는 꾸르릉)
  • 점심부터 흰 죽, 저녁에는 반찬이 있는 흰 죽

일반실에 온 뒤로는 뱃속이 꾸르륵 거리는 게, 지옥에서 사자가 뛰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방귀를 뀌려고 해도 안되길래 화장실에 앉았다. 그러자 방귀일 것 같았던 게 대변이었는지 물변이 나왔다. 매번 간호사분들이 소변과 대변에 대해 물어 왔다. 꼭 대변을 봐야 하는지 물었을 땐 아니라고 하시더니. 평소 집이 아닌 장소에서 큰 일을 하지 못하는 편이라, 병원에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던 참이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준비가 되니(?) 하게 되었다. 허허.

충수염 복막염 후기병원 밥
수액을 오른 손으로 옮겨서 왼손으로 죽을 먹었다.

일주일 내내 잠을 못 잔 탓인지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 예민 지수가 한도를 초과한 것 같았다. 물도, 음료도 맛이 없고 시무룩 상태였다. 안 아프던 곳도 갑자기 아릿아릿했다. 알고 보니, 피주머니가 움직여서 그런 것이었다. 월요일에 퇴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그래도 희망적이라면 점심부터는 죽을 먹어도 되겠다는 소식이었다. 뭔가 먹고 싶기는 하지만, 그게 죽은 아니었는데 정말 퇴원하기 위해 먹었다. 저녁에는 죽과 반찬이 같이 나왔다. 병원밥이 다 그렇겠지만,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병실에 불도 꺼지고,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 모두 조용히 잠드셨다. 드디어 최적의 수면 환경 상태! 오늘은 잘 수 있겠구나, 했더니 떨어지지 않는 열 때문에 고생했다. 얼음팩과 또 한 몸이 되어 열이 내려간 것을 확인한 후 잠들 수 있었다.

일요일, 수술 후 5일(6일 차)

  • 아침에 엑스레이 촬영 후, 흰 죽과 반찬 식사 세 끼
  • 월요일 퇴원 예고
  • 단, 내일 검사 후 결과 괜찮아야 함. 미열도 체크!

아릿하던 부분도 피주머니가 밤사이 또 움직였는지, 아프지 않았다. 뱃속 꾸릉꾸릉함도 줄어들고 몸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는 기분이 별로였지만, 어쩌면 내일 퇴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감(?)에 기운을 차리려고 흰 죽도 야무지게 먹었다. 그래 봐야 반도 못 먹었지만.

좋은문화병원 퇴원 절차아임리얼 스트로베리


정말 무료해서 내가 가입한 보험을 연구했다. (갑분 아이패드 활용ㅋㅋ) 여태껏 관심도 없었던 엄마가 계약해 놓은 보험을 파헤치고(?) 나니 뿌듯했다. 병원비가 얼마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다 받고 특약으로 좀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험사기를 치는구나-싶은 생각까지 이르렀다. (퇴원 후 보험사에 청구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금액이 적었다. 무룩. 알고 보니 내가 생각한 특약에 해당하지 않는 질병이라고.) 
저녁이 되자, 어쩐지 열감이 느껴졌다. 열 오르면 안 되는데, 퇴원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그 순간 열체크를 당했다(?). 결과는 37.7 후, 이불을 걷어내고 열기를 식혔다. 열이 내려가야, 확인받아야만 제대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두 시간 뒤 다시 열을 쟀을 때는 좀 내려간 터라, 퇴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다.

월요일, 수술 후 6일(입원 7일 차)

  • 새벽 : 피검사 위한 채혈.
  • 아침 : 엑스레이 촬영 후 흰 죽, 반찬 식사
  • 퇴원 허락(?) 후 피주머니 제거
  • 그리고 퇴원!
  • 점심, 저녁 : 새송이 소고기 죽

오늘 퇴원할 거란 생각에 점심도 신청하지 않았다. 담당의사 선생님의 오케이 사인만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수액은 교체해야 하는데, 퇴원 사인이 나지 않아 새로 달았다. 설마 퇴원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 속에 퇴원하리란 믿음(?)을 다지며 영화를 봤다.
외래시간이 되어서야 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결과는 예쓰!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구나. 엄마한테 알리고, 피주머니 제거하기를 기다렸다. 피주머니 제거하는 게, 어떤 꼬마는 라면이 호로록 빨려 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난 의외로 빨대가 빠지듯이 쏙, 깔끔하게 나온 것 같았다. 불편감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정말 살 것 같았다. 걸리적거리던 수액도 없고, 재잘거리는 여름콩이(반려조)도 만날 수 있었다. 오늘까지는 죽을 먹으라 해서, 죽을 주문 했다. 병원에서 나오는 죽은 정말 아무 맛도 없었는데, 사 먹는 죽은 나트륨(?) 같은 양념 맛이 느껴져서 좋았다. 먹을 수 있는 양은 적었지만, 병원밥보다 조금이나마 내킨다는 데 만족했다. 그리고 드디어 씻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피주머니를 제거하고 수술 부위에 방수밴드를 붙였기 때문에 샤워를 해도 괜찮았다. 기름진 머리가 잘 안 씻겨질까 봐 샴푸를 두 번이나 했다. 저녁을 먹고 일찍 누웠다. 중간에 한 번씩 깨긴 했지만, 아무런 방해 없이 잘 수 있다는 게 이리도 좋다니! 새삼스러웠다.

 

 

이제부터 별 것 없는 간단 요양 일지

화요일, 퇴원 후 2일 차

  • 아침 : 죽
  • 점심 : 안심 돈가스(일식 스타일)
  • 저녁 : 죽과 돈가스

오늘부터 일반식을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아침은 전날 남은 죽을 먹었고, 점심에는 돈가스를 주문해서 먹었다. 병원에 있을 때, 퇴원하면 가장 먹고 싶었던 게 엄마가 만든 갈비찜이랑, 짜장면, 돈가스였다. 갈비찜은 엄마가 주문하라 그래서, 일단 패스하고 짜장면보다 조금 더 당기는 돈가스를 골랐다. 일식 돈가스였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기름진(?) 걸 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일단 양에서부터 조금 힘들었다. 그동안 먹은 양이 적어서 그런지 위가 쪼그라들었나 보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한 조각씩 나눠주고도 남겨서 저녁에 마저 먹었다.

수요일, 퇴원 후 3일 차

  • 아침 : 죽
  • 점심 : 삼겹살
  • 저녁 : 소불고기

생각해보니 일반식으로 넘어와서는 거의 매 끼니 고기를 먹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먹고 싶은 양만큼 못 먹는다는 점이랄까. 자제하려고 하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슬프다. 그래서인지 조금 일찍 배가 고프다. 저녁을 먹고도 동생이 치킨을 먹는다길래 보니 침이 고였다. 지코바니까 괜찮을 거야, 하면서 몇 개 집어 먹었다. 허허. 내일 CT촬영과 피검사가 있어서 열두 시부터 금식이다.

목요일, 퇴원 후 4일 차(외래 진료)

  • 금식한 채 병원으로 출발
  • 채혈, CT촬영-복부
  • 실밥 제거!
  • 피검사, CT 검사 결과 아직 염증과 복수가 있는 것으로 판단
  • 일주일치 약 처방 받음

피검사 결과는 양호했다. 염증 수치 1은 점점 내려가고, 아직 지켜봐야 할 수치도 있지만 지금까지 검사 결과 이력대로라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CT 결과는 응급실에 왔던 첫날에 비해 물이 많이 빠진 상태이긴 하지만, 아직 뱃속 곳곳에 물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일주일치 항생제를 추가로 처방받았지만, 약 개수는 좀 줄이겠다고 하셨다. 그래도 많긴 하다. 약 먹을 때마다 목에 걸려서 컥컥거린다.
실밥을 제거하고 더 이상 복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해서, 기뻤다. 퇴원한 이후에도 내내 꼭꼭 차고 다니느라 버거웠는데,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아직 한번 더 내원해서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지금까지 호전 속도로 보아 빠르게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제 제법 걷는 것도,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조금씩 덜 불편하고, 덜 힘들다.

 

수술 후 2주 차

  • 우유, 빵, 피자, 라면 등 먹음
  • 뱃속은 편하지만, 여전히 대변은 조금 무른 변
  • 열감도 줄어듦
  • 약 맛 같은 쌉싸름함이 입안에 계속 맴돌긴 함
  • 충수염, 복막염 수술 후 13일 차-월요일, 제법 정상적인(?) 대변을 봄.

퇴원할 때 다음날부터는 일반식 먹어도 될 것 같다길래, 좋아하는 우유를 오랜만에 마셨다. 그리고 주말에는 빵도 먹고, 라면(식물성 탕면), 피자도 먹었다. 이미 기름진 고기도 일반식이 허락된 날부터 먹어왔으니, 소화 기관은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건, 위장 크기인 듯하다. 평소보다 못 먹어 아쉽지만 먹는 동안 좋았다. 항생제 탓인지 아직까지 약 맛이 계속 맴돌지만, 먹고 싶은 걸 그대로 먹는다는 게 어찌나 기쁜 일인지 모르겠다.

 

퇴원 후에도 한번씩 열이 오르는 걸 느꼈는데(잴 때마다 미열 37.4~37.9도), 주말부터는 그런 열감도 줄어드는 것 같다. 열이 오르긴 해도 금방 식는 것 같았다. 또 13일(월)에는 조금 더 보통의 것에 가까운 대변을 봤다. 아직까지 복부에 힘주는 것이 좀 힘들긴 하다. 걸을 때 왼쪽 배 근육(?)이 아릿한 것 말고는 지낼만하다. 빵빵하던 배가 조금씩 줄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여기서 더 줄어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평소 먹는 양보다 적은 건 맞는데, 운동을 따로 하는 건 아니라서 그대로 뱃살이 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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